상하이에서 살아온 한중 가정의 20년

korean.shanghai.gov.cn| 202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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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오쥔(曹峻)과 박은실 부부 [사진 출처: 신민 이브닝 뉴스(新民晚報)]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을 무렵, 화동사범대학교 캠퍼스 트랙 위에는 차오쥔과 박은실 부부의 모습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매일 함께 달리기, 이제는 습관이 됐어요. 뛰다가 걷다가,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곤 하죠." 상하이 소재 대학 교수와 한국인 아내로 이루어진 이 가정에게 매일 저녁 러닝 타임은 바쁜 일상과 가정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완충지대이자, 20년 결혼생활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2003년 봄, 차오쥔은 상하이에 유학 온 박은실을 만났다. 당시 사스(SARS)의 먹그늘이 도시를 짓누르며 사람들은 대부분 외출을 꺼렸다. 하지만 그 특별한 시기가 오히려 두 사람을 가까이 이끌었다. 처음에는 서로를 위로해주는 사이였지만, 어느새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변해갔다고 차오쥔은 회상했다.

언어는 두 사람 앞에 놓인 첫 번째 장벽이었다. 당시 차오쥔은 한국어를 전혀 몰랐고, 박은실의 중국어 역시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두 사람은 마치 성실한 초등학생처럼 사전을 뒤적이며 말을 나누었고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까지 동원해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야 할 때도 많았다고 박은실은 웃으면서 말했다. 더듬더듬 이어지는 대화가 속도는 느렸지만, 그만큼 더 진지하게 다가왔다.

연인에서 평생의 동반자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현실의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4년, 두 사람은 결혼을 준비했다. 당시 국제결혼 절차는 복잡했고, 제대로 된 안내조차 부족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편리하지 않았어요." 차오쥔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하이에서 처리할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뿐이었고 '미혼 증명서' 한 장을 발급받기 위해 수없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정보가 연동되는 게 아니라서, 상하이 구(區) 차원에서 발급한 증명서를 한국에서 인정해주지 않았어요. 중국 전역에서 미혼임을 증명하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었겠어요?" 당시의 답답함과 초조함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차오쥔은 말했다.

여러 차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상하이에 가정을 꾸렸다. 결혼 후에도 박은실은 화동사범대학교에서 중국어 공부를 이어갔고, 상하이라는 도시의 온기를 하루하루 더 깊이 체득해 갔다.

아들이 태어나자, 두 문화를 자엽스럽게 체득하게 하는 것이 이 가정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 현재 상하이세계외국어중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은실은 언어가 곧 문화 정체성의 뿌리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 되던 해부터, 주말은 꼼꼼하게 계획됐다. 오전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서예, 바둑, 피아노 등 각종 취미 수업을 오갔다.

"억지로 시킨 적은 없어요. 아이 스스로 적응하며 재미를 붙였죠." 부부의 신념은 분명했다. "많은 이들이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는 자연스레 이중 언어 구사자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가정에서 이끌어주고,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죠." 부부는 아들이 두 문화적 배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길 바랐다. 지금은 아들이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부의 마음에는 자부심과 고마움이 교차한다.

20년간의 국제결혼 생활, 좋은 감정과 호흡을 유지해온 비결을 묻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달리기 이야기를 꺼냈다. 비 오는 날만 빼고 그들은 거의 매일 함께 화동사범대학교 캠퍼스에서 한 시간 넘게 달린다.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그 고정된 시간 동안 그들은 집안일부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 때로는 국제 정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두고 토론한다.

"토론이 있어야 이해가 생겨요. 솔직하게 이야기할수록 공통점이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 차오쥔은 가정 내 대화 방식이 문화 간 소통의 방식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한중 문화는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세계화 배경 속에서 차이점을 부각하는 것보다 공통점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은실은 웃으며 덧붙였다. "처음엔 질문이 너무 많다고 느꼈어요. 늘 이것저것 물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게 바로 그의 소통 방식이고,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일상 속에서 두 사람은 상하이의 다른 많은 부부들처럼 자연스럽게 가사 분담을 한다. 전통적이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분업 속에서, 이 작은 가정은 조용하면서도 단단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제 아들은 대학에 진학했고 집을 떠났다. 차오쥔과 박은실의 삶 역시 오랜 시간의 조화 속에서 한결 여유로운 리듬을 찾았다. "상하이는 생활이 편리하고, 물가도 합리적이며, 도시 시스템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어요." 박은실의 말에는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곳에서 일과 가정,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을 모두 일궜어요."

춘절이면 그들은 함께 새해 춘롄(春聯)을 붙이고, 녠예판(年夜飯, 중국에서 섣달그믐날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하는 식사)을 준비하며, 때로는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해 소박한 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에게 집이란 이미 지리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이다. 매일 나란히 달리는 트랙 위의 호흡이고, 식탁 위에 어우러진 한중의 정취이며, 지난 20년을 이해와 포용으로 채워온 삶의 일상 그 자체이다.

 

원문 출처: 신민 이브닝 뉴스